블로그 성문경/너는 겁쟁이입니까?

너는 겁쟁이입니까?

 

  1. 길을 걸어가다 앞에 큰 개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그 개는 당장에라도 나를 물어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맹렬히 짖어대고 있었다. 등에서 땀이 났다.

 

  1. 10년 가까이 친하게 지낸 친구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도 한 달이 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오늘만큼은 좋아한다고 말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도저히 못 하겠다.

 

  1. 내일부터 새로운 학교에 다니게 된다. 학교 가는 길도 낯설고 학교 건물도 낯설고 책상도 낯설고 반의 동급생들도 낯설다. 생각만 해도 불편할 것 같아서 정말 가기 싫다.

 

앞의 세 가지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있다.

 

약 1년 전에, 나는 어느 잡지사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했었다. 그달에 내게 주어진 일 중에, 만들어 놓은 설문지를 설문조사 업체에 등록하는 것이 있었다. 선배 기자가 다른 동료 어시스턴트에게 설명을 전해 들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동료가 설명한 것을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는 생각에 다시 묻지는 않았다.

 

그날 곧장 설문조사를 등록했다. 다음 날 등록에 대한 메일이 하나 왔다. 그런 메일이 온다는 것에 대한 설명은 동료에게 듣지 못했는데, 나보다 나이도 어린 동료에게 다시 묻는 것이 괜히 싫었다. 그래서 메일을 읽어본 뒤 임의대로 처리했다. 약 일주일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역시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왔는데, 나에게 일을 부탁했던 선배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그 전화를 받은 뒤 재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약 3초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내가 등록했던 설문조사가 진행이 안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분명히 일주일 전에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메일을 열어보니, 설문조사 업체에서 회신이 하나 와 있었다. 그 회신은 비용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것에 관해 확인하고 다시 회신을 줘야 진행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회신 메일을 마감이 이틀 남은 그 날 확인하고 말았던 것이다. 진행이 되었을 리가 없었다. 회삿돈이 500만 원이나 날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날, 선배에게 20분 동안 자괴감이니 모멸감이니 것들을 느낄 사이도 없이 바람처럼 욕을 먹었다. 잘 모르면서 임의대로 진행했던 내 잘못이었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내일까지 어떡하든 처리하겠습니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선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잘 모르면 물어봐. 마음대로 하지 말고. 이 세상에 네가 모르는 게 더 많을걸? 물어봐, 모르면.”

 

전화를 끊은 뒤 5분은 자괴감에 빠졌다가, 그다음 5분은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으며, 그다음 5분 동안은 선배의 ‘모르면 물어봐’라는 말을 되뇌고 있었다.

 

앞의 세 가지 이야기와 뒤에 나온 내 이야기의 공통점은 뭘까.

네 이야기는 모두 ‘겁’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굳이 내 이야기를 집어넣은 이유는,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겁의 종류가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 나온 세 가지의 겁은 단지 그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지나가면 잊혀진다. 그러나 무지에서 오는 겁은 겁을 느꼈던 상황이 지나가면 겁을 느꼈던 그 상황보다 훨씬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네 번째의 내 이야기처럼 모르는 것을 들킨다는 두려움에서 출발하여 결국 상황을 거대하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작게는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망신을 당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질문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면서 아는 체했다가 정말 잘 아는 사람에게 망하는 것보다는, 질문하는 그 순간만 잠깐 창피한 게 낫다. 그것도 몰라? 를 듣는 것보다, 아는 거 맞아? 를 듣는 것이 더 창피하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자. 공부 잘하는 애들이 왜 그리 애타게 선생님을 찾았는지.

 

 

인간 세상에서는 배우지 않고 버틸 방법이 없다.
인간 세상에서는 배우지 않고 버틸 방법이 없다.

https://pixabay.com/photo-692005/

 

모르는 것은 무지가 아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자세가 무지한 것이다.

재력도 재력이지만,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 진정 무력해지는 순간은 사실 지식의 차이다.

밥벌이는 재력으로 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되는 것은 지식으로 하는 것이고 재력도 지식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돈은 격차를 줄이기 쉽지 않지만, 지식은 충분히 가능하다.

자, 이제부터 질문하는 습관을 가지자. 멋진 사람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안 배워도 알면 가장 좋지만, 인간 세상에서 안 배우고 버티는 방법은 없다.

겁내지 말자. 그렇다고 오만해지지도 말고.

 

글. 성문경. (28,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