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해지지 말자

거창해지지 말자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아니 어쩌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이 사회에 유행처럼 번졌던 질문 중 하나는 ‘너는 좌우명이 무엇이냐‘였다. 드라마, 예능에서 심심찮게 등장했고(대체 왜?) 대입 면접이나 취업 면접에서도 단골 질문이었다.(그러니까 대체 왜?) 조금 배운 티를 내고 싶은 사람들은 저마다 좌우명 따위를(조금 더 유식해보이고 싶으면 ‘좌우명’ 대신 ‘삶의 모토’ 같은 단어를 쓰기도 했다.) 묻곤 했다. 사실 그런 질문의 이면엔 자신에게도 좌우명이 무엇인지 물어주길 바라는 얄팍하고 유치한 수작이 깔려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좌우명을 자랑스럽게 말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는 그런 질문에 고민 없이 그럴 듯한 좌우명을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놀랍고 부럽고, 한편 의아했다. 저 사람들은 저런 질문을 대비해두고 사는 걸까? 정말 자기 삶의 기준을 저렇게 적확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나는 왜 ‘개나 소나 있는’ 좌우명 따윌 정하지 못했을까? ‘좌우명 없는 인간’ 이렇게 불러보면, 어쩐지 한심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시절 내게 좌우명이란 어쩐지 한 번 정하면 쉽게 바뀔 수 없는 아주 무거운 선언처럼 느껴졌다. 단순한 말의 선언을 넘어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라는, 신념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이를 테면 사상적 문신이랄까. 몸에 새기는 문신도 쉽게 지울 수 없는데 사상에 새기는 문신은 더할 것이 분명했다.

아,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문신 자체를 나쁘게 본다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언젠가 문신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편이다. 마음에 쏙 드는 문신을 정하지 못했을 뿐. 그런 점에서 그 시절의 나도 마음에 쏙 드는 좌우명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고작 한두 문장으로 내 인생을 결정지어야만 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어영부영, ‘개나 소나 있는’ 좌우명 하나 없이 나이만 먹었다.

‘문학을 하겠어. 그 중에서도 시를!’ 외치던 소년이 ‘글로 밥 벌어 먹을 수만 있다면야’ 하는 서른이 되는 동안 나도 많이 변했다. 그 변화를 누군가는 융통성, 노련미, 어른스러움이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협, 체념, 소시민적 합리화라고 한다. 어느 쪽이든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서른에 이르러 내게도 아주 조금 좌우명을 닮은 어떤 문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거창해지지 말자’다.

실로 ‘거창해지는 일’만큼 거추장스러운 것은 없다는 것이 요즘의 내 생각이다. ‘거창하지 말자’ 가 아니라 ‘거창해지지 말자’ 인 한 끗 차이를 주의해주길 바란다. 그러니까 구태여 어떤 태도를 취하려고 하지 말자는 의미다. 소중한 것은 소중하게, 흘려보내도 될 것은 흘려보내자는 거다.

에세이나 시를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손바닥만한 소재에 인생이나 우주를 담아내는 것이 진짜 시인의 능력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과하게 거창하고 과하게 슬펐다. 설령 그 시절의 내가 정말로 초기 우울증 환자였다고 해도, 의도적으로 그런 문장을 지어내려 한 건 부질없었단 생각을 한다. 사소한 것에는 그 나름의 사소한 의미가 있다. 사소한 의미는 사소한 단어와 시상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때로 지나친 거창함은 억지스러울 뿐이다.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에서 갑자기 삼라만상의 진리라든가 양자역학의 논리를 얘기할 필요는 없다. 물이 흐르고, 열매가 익고, 계절이 바뀌고, 요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리틀 포레스트는 충분히 좋은 영화다.

거창해지지 말자, 라는 좌우명(혹은 그 비슷한 것)은 사랑에도 참 좋다. 사랑은 거창해지려 한다고 거창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굴 위해 목숨을 던진다고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사소하게, 일상의 구석구석을 알뜰히 챙기고 서로의 눈빛을 읽는 일. 잡은 손의 온도를 가늠하고, 사소한 위로를 건네는 일. 언젠간 허무하게 죽겠지만, 사는 동안 담담히 곁에 있는 일. 겨우 그런 것들이 사랑의 실체다. 거창한 사랑을 쫒다가 소중한 사람을 잃는 일을 나는 많이 듣고 봐왔다.

무엇보다 좋은 건 거창해지지 말자, 라는 좌우명 덕분에 언제 좌우명이 또 바뀌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어차피 거창하지도 않은 좌우명이었는데 뭐 어때. 사람이 뭘 어떻게 해보려 하지 않아도, 가벼운 것은 가볍고 무거운 것은 무겁게 삶에 내려앉는다. 소나기 빗줄기에 맞아 죽는 시늉을 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 해일이 범람하고 산사태가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죽음이 펼쳐질 테니까. 거창해지려 하지 않아도 거창한 일은 생기고야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랑비에도 심장에 구멍이 뚫릴 만큼 연약해지곤 하는 것이 사람이라 누군가는 문학을 한다. 내 존재는 요즘 문학을 하기엔 꽤 단단해져버렸다.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만 글을 쓴다. 웬만한 아픔에는 괜찮다고 말하며 지낸다. 그러지 않고서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언젠가 내가 뱉은 괜찮다는 말들이 쌓여 나를 짓누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우선 지금은 괜찮다. 거창해지지 않는 것이 최선의 처세술인, 그런 작가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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