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탱고를 배우면서 각별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 매번의 아브라쏘가, 매번의 스텝이, 매 순간의 안아줌과 매 순간의 발걸음이 특별했다. 그러나 지난 밤 한번의 춤, 한번의 딴따는 유독 각별했다.

그녀는 우리 탱고 동호회의 첫 외국인이었다. 내가 탱고를 배운지 4개월인가 5개월 남짓이 지났을 때 들어왔는데 그때도 이미 초급의 실력은 아니었다. 이미 브라질 춤인 포호를 배운적이 있고, 태권도가 좋아서 지금도 열심히 발차기를 하고 있다는, 스위스에서 건너온 대학교 연구원.

사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지만 같이 동호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같이 공연을 하면서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그 즈음에 그녀는 남자친구가 생겼고 나도 갓 연애를 시작하던 차였기에 서로 수다를 떨 주제가 늘기도 했다. 워낙 운동신경도 좋고 춤도 잘추는 친구인데다가, 춤을 약간 무술 수련하듯 하는 승부욕이 닮아서 그런지 공연 준비는 순조롭고 재밌었다. 물론 그 덕에 안무를 봐주던 선생님에게 똑같이 ‘무슨 싸움 하는 것처럼 춤을 추지 말라’는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공연 곡으로 선택한 곡은 Juan D’arienzo 의 <Este es el rey>. 뜻은 This is the king. 지금 생각하면 파워풀한 무브를 좋아하고 또 잘했던 우리에게 잘 어울리던 곡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때의 공연 영상을 보면 다시 또 쥐구멍에 숨고 싶어지지만. 사실 문제는 실력이 아니었다. 문제는 탱고 선생님들이 정확히 우리 공연 한달 전에 같은 곡으로 공연을 했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바보같이 선생님들 공연을 보고나서도 그 곡이 그 곡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나서야 망했다며 엄청 비교될거라고 덜덜 떨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죽자고 안무를 짜는 수밖에.

공연때는 연습의 반도 안나올 정도로 긴장을 많이 한다고들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큰 실수는 없었고, 공연은 무사히 끝 마쳐서 홀가분했다. 사람들도 많이 격려와 칭찬을 해줬고, 목표의식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낀 좋은 경험이었다.

사람이 견물이면 생심이라고 했던가.

공연을 하고 나니 선생님들은 같이 파트너로 대회도 나가보라고 부추겼다. 공연 준비 때문에 한달정도 워낙 바쁘고 힘들었던 우리는 대회라는 얘기에 솔깃하면서도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나중에 얘기했던 거지만 우리는 서로 중간에서 찔러보는 선생님들에게 ‘상대방이 하면 저도 할게요’ 라며 선택을 미루고 있었다. 그때는 대회가 생각도 욕심도 있었지만 조금은 공연에 대한 여파가 있던 때였으니. 물론 우리는 선생님들이 대회를 찔러볼 때 이미 나가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대회는 어이없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국제 탱고 챔피언십 대회의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하는 대회였기에 완전한 유럽 사람인 그녀는 대회에 나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동호회에 외국인이 들어왔던 경우도 없었고, 그 외국인이 대회에 나갔던 경우도 없었고,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선생님들도 나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컸다. 심지어 대회를 채 일주일도 남기지 않고 벌어진 일이었고, 당연히 그녀는 상심이 컸다. 그 와중에 나는 다른 파트너를 구해서 또 대회를 나가게 됐으니, 나는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같이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도 엄청났다.

나는 어찌저찌 대회를 마쳤지만, 대회장 한켠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플로어를 바라보던 그녀를 보며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 이후로 우리는 자주 춤을 췄다. 그녀의 출국이 두 달 정도 미뤄지게 되고, 6월에 헤어질줄 알았던 것이 8월의 이별로 다가오자, 동호회 사람들 모두가 그랬듯 나도 그저 즐겁게 재밌게 그녀와 춤을 추며 시간을 보냈다. 마치 그녀가 영영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매주 돌아오는 토요일이면, 수업시간이면, 그리고 어느 밀롱가에 가면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8월 28일, 그녀의 출국날이 다가왔다. 나는 8월 23일부터 30일까지 중국에 있게 된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의 밀롱가가, 나는 그녀를 보는 마지막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또 공연 연습이 있었다. 중국 출국 준비로도 정신이 없었다. 보통 밀롱가가 끝나는 시간은 밤 12시 30분. 공연 연습은 11시에 끝났고, 그래도 얼굴을 봐야 좋겠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밀롱가에 도착했고, 오거나이저 님이 반갑게 맞아주시면서도 다 끝날때가 돼서 왠일로 잘 다니지도 않던 밀롱가를 왔냐며 놀라워했다. 이미 끝나기 1시간 전이었기에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그녀는 역시 이미 플로어에서 한참이나 춤을 추고 있었다. 꼬르띠나가 나오고 쉬는 시간이 되자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했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믿을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슬프지만 슬퍼할 시간은 많이 없었다. 밀롱가가 끝나는 동안까지는 다섯 딴따가 남아 있었다. 그녀와 쉬지 않고 춤을 춰도 다섯 딴따를 추면 이제 한국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춤과 이별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첫 딴따는 발스였다. 월요일인데다가 춤을 많이 추지 못한 상태라 몸이 덜 풀렸었다. 더군다나 발스는 탱고 곡 중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장르였다. 그래도 그날은 주저하거나 간을 볼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까베세오가 되었다. 발스는 3박자. 유럽의 왈츠가 건너와 탱고에 녹아들어 변형된 장르. 우아하고 회전 동작이 많은데다가 박자가 7마디 이후 8마디 째에서 4박자로 쪼개지는 부분이 있다. 밀롱가가 많이 한산해졌다고는 해도 아직 론다에는 사람이 꽤 있었다. 앞으로 뒤로 2걸음 이상은 걷지 못하는 상황.

그래도 첫 딴따가 발스라서 다행이었다. 음악이 신나고, 뮤지컬리티를 엄청나게 발휘해야 하는 것보다는 흐름을 잘 타는 것이 중요했다. 이날은 실수를 해도 즐거웠다. 사실 탱고에는 딱히 실수라는 개념이 없으니, 그저 즐겁게 춤을 췄다고만 해도 될 것이다.

두 번째 딴따는 앉아서 좀 쉬기로 했다. 다섯 딴따가 남았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사람과 연속으로 다섯 딴따를 추는 일은 밀롱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녀에게도 이 밀롱가는 출국 전의 마지막일 지도 몰랐는데, 내게 그녀가 다른 사람과 춤을 출 기회를 뺏을 권한은 없었다. 그녀도 내가 오기 전부터 거의 4시간을 춤을 췄으니 발이 조금 아파보였다. 물을 마시고 쉬는 동안 그녀는 다른 사람과 플로어에 나갔고, 나도 다른 분과 같이 춤을 췄다.

세 번째 딴따, 드디어 탱고 곡에 춤을 췄다. 헌데 밀롱가의 마지막이라 그런지 곡들이 굉장히… 무시무시하다고 해야될까. 느린데다가 장엄하고 동시에 엄청 테크니컬했다. 한마디로 춤추기 어려운 곡. 춤을 추면서 몇 번이나 미안해요- 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즐거웠다. 언제 이런 곡에 춤을 춰볼까. 공연을 하던 생각도 났다.

네 번째 딴다, 곡이 나오고 이야기했다. 이번에도 출까요? 나는 말했다. 이번엔 쉬고 마지막 딴따 춰요. 그녀도 동의했다. 각자 다른 사람과 춤을 추었다.

드디어 마지막 딴따. DJ 가 외쳤다. ‘마지막 딴따입니다.’

눈을 마주치고, 까베세오를 하고, 손을 내밀어 에스코트를 해서 플로어로 같이 나가서, 음악을 들으며 마주보고 서서, 서로에게 다가가, 자세를 고쳐잡고, 부드럽게 아브라소를 하고, 첫 스텝을 내딛기까지, 수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수많은 추억들. 그리고 이게 정말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 마지막 딴따의 시작일 거라는 생각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사실 그녀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춤은 내가 아닐 것이었다. 그녀의 출국은 일주일 정도 남은 28일이고, 단지 내가 더 일찍 출국해서 그녀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는 것 뿐이었다. 마지막 춤은 오히려 그녀가 아니라 내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녀에게는 동호회 사람들과 하는 마지막 성대한 환송 파티도 있을 것이고, 선생님과 즉석에서 하기로 했던 공연도 있을 것이고, 밤을 새는 환송 술판도 벌어질 것이었다. 그녀도 잘하면 본국인 스위스로 돌아갔다가 조만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고, 비록 도시가 달라지더라도 간간히 밀롱가에서 마주치는 일은 흔하게 벌어질 것이었다. 안타까워하며 이별을 슬퍼했던 게 민망해지리만큼 자주 춤을 추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수많은 생각들을 끌어안고 그녀와 함께 곡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녀와 마지막 춤을 추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와 춤을 추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이곳에 왔고, 론다 위에서 그녀와 안고서 탱고를 추고 있으니까. 할 일을 하기위해 왔으니, 할 일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했다.

탱고의 1딴따는 4곡으로 구성되어있다. 때문에 한 사람과 같이 플로어에서 춤을 추기로 결정하면 평균 10분에서 15분이라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된다. 탱고라는 춤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그래서 좋은 사람과의 기분 좋은 춤은 1딴따가 1분같지만, 가끔은 너무 별로인 사람과의 춤은 1분이 10년 같을 때도 있다.

나와 그녀의 마지막 딴따는, 글쎄 어땠었나. 길다면 충분히 길다고 할 정도로 멜로디 하나하나 스텝 하나하나를 충실히 재밌게 밟아나갔던 것 같고, 짧다면 너무 짧다고 할 정도로 한 딴따가 금방 지나갔다. 확실한건 좋은 딴따였다. 즐거웠고, 서로가 공연 때보다도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밀롱가의 마지막 딴따가 끝나고, 이제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아주며 앞날을 축복했다.

내가 언젠가 스위스에 갈게요, 가게 되면 같이 못나간 대회를 나갑시다. 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했다. 그녀도 웃으며 언제든 오라고 했다. 사실 그러기보단 그녀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는 게 더 빠를 것 같지만.

마지막 딴따의 여운동안 서로 느끼고 생각한건 많겠지만, 각자가 품에 안고서 가져가는 것이 탱고의 미덕일테니. 다시 만나 춤을 추게 되는 날까지, 이 여운은 꼭 가지고 있으려 한다. 잘가요, 그리고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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